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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뉴스]한반도의 배꼽 강화섬 -김종래와 함께하는 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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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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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의 배꼽 강화섬
    <역사기행> 이영산

     


     


     


    편집자주)동원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김종래와 함께하는 역사여행’ 수강생들은 지난 10월 23일 강화도로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몽골제국에 관해 탁월한 식견을 겸비하고 몽고대통령 고문으로 있는 김종래교수는 동원대에서 10주차에 걸쳐 몽고와 칭기스칸에 대한 역사강의를 하고 있다. 이 글은 수강생중 이영산씨의 기행문이다. 


    경기 광주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섬 강화도.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있어 육지와 연결된 강화는 해안선의 길이가 100Km가 채 안되며, 해안도로를 질주하는데 1시간이면 족한 자그마한 섬이었다. 여느 군단위 면적에 불과한 땅(300Km2)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되고 응고된 보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강화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마니산 참성단이다. 단군신화의 유적지이기도 한 참성단은 지금도 전국체전의 성화가 채화되는 곳이다.


     


     



     


     


    강화도의 역사 유적인 고인돌(지석묘)은 국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인 청동기시대 땅이 강화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강화 고인돌은 두 개의 돌이 받침을 하고, 거대한 덮개돌을 얹은 탁자식 고인돌(북방식 지석묘)의 전형을 보여준다.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80톤에 이른다고 하니, 당시 권력자의 위세를 느낄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가 빌미가 된 1866년의 병인양요는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포격으로부터 시작됐다. 5년 뒤 발생하는 신미양요 또한 미국 해병대의 강화도 상륙작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1875년 일본의 운요호 사건과 이듬해의 굴욕적 강화도조약까지 척화와 개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화도는 역사의 맨 선두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강화도에는 12진보, 60여 돈대가 있다. 진과 보는 조금 큰 단위의 군대가 있는 해안의 병영이고, 돈대는 지금의 GP와 같은 초소라 할 수 있다. 망루에서 서양의 전함이 보일 때마다 북을 치고 봉화를 올렸을 것이다. 그리곤 화살을 쏘고 창을 치켜들며 조국 수호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서양의 대포는 개념이 다른 무기였다. 과학기술과 멀어져있던 조선 말기 우리의 대포는 그저 쇳덩이를 멀리 날리는 기계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서양의 대포는 두.세배 멀리 날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떨어지는 지점에서 폭발하기까지 했으니 애꿎은 병사들만 무모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을 지키던 조선의 병사들, 신미양요 때 끝까지 저항하다 순국한 50여명의 마지막 병사들까지 그들의 충정과 원혼이 신미순의총 비석 하나로 달래질지 모를 일이나, 초지진부터 광성보, 갑곶돈대에 이르기까지 강화를 둘러싼 진보 돈대가 그 위용 그대로 서 있으니, 오늘날 다시 강화를 찾는 우리들 마음에서 되살아난다면 그들의 죽음이 영원한 삶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이영산(도서출판 꿈엔들 대표)




     



     


    2009년 11월 05일 17:38:07


     



      한반도의 역사를 온 몸에 안고 있는 점, 개성과 한양이 가깝다는 점, 지도상 한반도 서쪽 중앙에 위치한 점 등을 고려해 사람들은 강화를 ‘한반도의 배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작 강화도는 전쟁과 핍박이 더 많은 땅이다.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강화도는 언제나 전쟁의 전초기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당연히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